TISTORY 바로가기

티스토리 툴바

별나라 :: 도가니 - 음습한 인간의 도가니
꿈은 우주여행. 猫昴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83)
Diary (92)
Day recipe (38)
Love The world (39)
work (6)
Tip (8)

달력

« » 2012.0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영화 도가니는 2005년 PD수첩으로 알려진 [광주인화학교 사건]이라는 실화와 소설가 공지영의 원작 소설 '도가니'라는 두가지 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실화를 가공하고, 가공한 2차 가공품 영화 도가니를 보고 나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렸다.

아... 봉준호는 위대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영화]를 만들어야지 다른걸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과거 PD수첩 영상을 보았고,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나는 영화를 본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공유가 등장하는 각색된 PD수첩 한편을 보고 나왔다



아이들이 강간을 당하고, 괴로워하고, 칼 부림을 하고, 공유가 사슴같은 눈으로 멀뚱멀뚱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미적지근한 감정을 차마 숨길 수가 없어 입꼬리만 올리게 되었다. 차라리 내 양옆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내 친구와 남친과 함께 왔으니 당당히 민망한 욕을 하며 울던 이름 모를 여자가 더 영화 같았다.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도 알겠고, 왜 저런 장면을 집어 넣었는지도 이해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봐 둘만한 영화지만 소장할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친구는 내게 영화에 너무 많은 걸 바란다고 하지만 나는 사회를 돌려까는 영화를 봤음 봤지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는 보고 싶지 않다. 특히 다큐멘터리도 아닌 영화에서는. 실화가 이렇게 잔인한데, 영화에서까지 이렇게 관객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영화는 사절이다. 차라리 실화의 잔인함만 담았어도... 감독이 공유의 손을 잡고 재판장을 가지 말고, 공유를 재판장에 내팽겨쳤으면 이 보다 낫지 않았을까? 암만 봐도 감독이 감정 이입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뒤로 자꾸 살인의 추억이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다. 새삼 깨달았지만 봉준호는 위대하다. 



하지만 도가니의 도입부분은 정말 마음에 든다. 특히 도로에 뛰어든 사슴(고라니?)을 치고, 허탈하게 안개 낀 무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영화의 전체적 이미지를 잘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영화 공간적 배경이 무진으로 옮겨진 것도. 
뿌연 안개에 가린 마을은 진실을 은폐하기에 적절한 장소처럼 보여진다.

안개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 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 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 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기형도



스크린에 안개가 드리워질 때 마다 기형도 시인의 [안개]가 생각났다. 인간의 음습한 습성과 무관심, 집단의 무서움을 싸늘하고 답답하게 이야기하는 이 시가 무엇보다 이 사건을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잘 만들어졌든, 아니든 영화[도가니]는 현재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에 왜 실제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대한 확실한 공지는 왜 빠진 건지 모르겠다. 있었는데 내가 못본 건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猫昴